발행일: 2025년 9월 14일
한미 산업장관, 뉴욕서 '대미 투자 이견' 속에 회동…난항 지속 전망
한국과 미국의 산업장관이 최근 뉴욕에서 중요한 회동을 가졌으나, 양국 간의 핵심 경제 현안인 '대미 투자 문제'와 관련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난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만남은 미국의 강경한 산업 정책 기조와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에 대한 미국 내 복잡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루어져, 그 결과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의 지정학적 재편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첨단 기술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 안보를 둘러싼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실질적인 진전은 다음 기회로 미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투자 문제를 넘어선, 동맹국 간의 경제 안보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1. 긴장감 속 뉴욕 회동, 핵심 쟁점은 대미 투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금요일인 12일,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양국 간의 경제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러트닉 장관이 9·11 테러 24주기 추모식 참석을 위해 뉴욕에 머무는 동안, 워싱턴으로 입국했던 김 장관이 급히 뉴욕으로 향하며 성사된 이번 회동은 그 배경부터 긴장감을 감돌게 했습니다. 9·11 테러 추모식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진 이번 만남은 단순한 경제 협상을 넘어, 양국 간의 안보 동맹의 연장선상에서 경제 안보를 논의하는 자리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과거에도 강경한 통상 정책을 지지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자국 산업 보호와 공급망 재편에 있어서는 타협 없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는 회동 전 방송 인터뷰를 통해 한국을 향한 직접적인 압박 발언을 쏟아내며 협상 분위기를 더욱 경색시켰습니다. 그는 "일본은 이미 (투자 관련) 협정에 서명했다. 한국 또한 협정을 받아들이거나 (25%의) 관세를 내야 한다. 선택은 흑 아니면 백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한국의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단순한 협상 전략을 넘어, 미국의 외교 정책 기조가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동맹국에게도 강력한 일방적 요구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25% 관세'는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에 적용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철강 및 알루미늄에 부과되었던 '국가 안보' 명목의 232조 관세 부과 사례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나 미국 내 경쟁력을 갖춘 첨단 산업 분야를 겨냥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미국은 지난 몇 년간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하여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초강수를 여러 차례 두어 왔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는 글로벌 경제 질서가 자유 무역에서 '관리 무역' 내지는 '보호주의적 무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미국, 일본 합의 모델 제시하며 한국에 강경 요구
이번 회동에서 미국 측은 한국의 대규모 투자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강경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한국이 3천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경우, 투자처 선정은 미국이 주도하고 투자금 회수 후 발생하는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요구는 이미 일본과 미국 간에 합의된 '5천500억 달러 투자에 대한 45일 이내 투자 및 이익의 90% 미국 귀속' 모델을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2.1. 일본 모델의 상세 분석과 배경
미국이 한국에 제시한 '일본 모델'은 2024년 초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방미 당시 발표된 양국 간의 '경제 파트너십 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바이오 기술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향후 5년간 5천500억 달러(약 75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이 합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45일 이내 투자 확정 및 투자 이익의 90% 미국 귀속'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일본은 왜 이러한 조건을 수용했을까요? 일본의 경우,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기업의 미국 내 첨단 제조 시설 건설을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재건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필수적인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 안보'라는 대의명분 하에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자국의 첨단 기술 산업을 미국의 대규모 보조금과 연계하여 육성하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 확보와 함께,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고려했을 것입니다.
2.2. 미국의 요구 의도와 함의
미국은 자국 내 첨단 제조업 육성 및 공급망 안정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한국의 핵심 산업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일본과의 사례를 기준점으로 삼아 한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동맹국 간의 협력'을 가장한 '일방적 요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투자처 선정 주도'는 한국 기업들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이익의 90% 미국 귀속'은 투자 대비 수익성을 극도로 낮춰 기업의 투자 유인을 크게 감소시키는 조항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요구는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집니다. 첫째, 미국은 자국의 경제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두며,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둘째, '탈중국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핵심 기술 역량(반도체, 배터리 등)을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깊이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의도가 엿보입니다. 셋째, 이러한 강경한 요구는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자국 내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국내 정치적 요인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동맹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 성과'를 보여주려는 포퓰리즘적 성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구는 한국 기업들이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거나 실행 중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 계획의 재검토를 강제하고, 장기적인 사업 전략 수립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3. 한국의 고심: 경제 주권과 동맹 관계의 균형점 찾기
미국의 이 같은 강경한 요구에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깊은 고심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미국에 단행하거나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제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일본과의 합의를 기준으로 더 강력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 주권과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3.1. 한국 기업들의 기존 대미 투자 현황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 정책과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 기조에 발맞춰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왔습니다.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삼성전자: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하여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이 공장은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 SK하이닉스: 인디애나주에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 및 R&D 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약 38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의 미국 내 생산을 위한 핵심 거점이 될 예정입니다.
- 현대자동차그룹: 조지아주 서배너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 중이며, 여기에 약 76억 달러(약 10조 원)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은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능력을 갖출 예정입니다.
-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이들 배터리 3사는 GM, 스텔란티스, 혼다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테네시 등지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 및 계획하고 있습니다. 총 투자액은 수백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러한 투자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인센티브를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핵심 고객사와의 근접 생산을 통해 공급망을 안정화하려는 기업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투자들을 통해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 한국 기업의 투자를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치 성공 사례로 대외적으로 홍보해왔습니다.
3.2. 경제 주권 침해 논란과 기업 자율성 제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일본과의 합의를 기준으로 더 강력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 주권과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투자처 지정: 특정 투자처 지정은 기업이 시장 상황, 생산 효율성, 인력 수급, 물류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입지를 선정할 자율성을 박탈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A지역이 아닌 B지역에 투자하려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B지역을 강제할 경우 기업은 불필요한 비용 증가와 비효율을 감수해야 합니다.
- 이익 배분 조건: '투자금 회수 후 이익의 90% 미국 귀속'이라는 조건은 기업의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훼손합니다. 이는 기업의 재투자와 연구개발(R&D) 역량 확보를 어렵게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기술 노하우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투자 리스크는 온전히 부담하면서 수익은 극히 일부만 가져가게 되는 불균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 윤리 및 주주 이익 보호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 이익의 대부분을 미국에 넘겨야 한다면, 해당 기업은 국내 주주들에게 어떤 명분으로 투자를 설명하고 이윤을 보전할 수 있을지 난감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 원칙과 국제 통상 규범에 따라 기업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특정 국가의 일방적인 요구에 굴복하여 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은 자국 산업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4. 글로벌 통상 환경의 변화와 보호주의 확산
이번 한미 산업장관 회동에서 나타난 이견은 단순히 양국 간의 개별 현안을 넘어,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 각국은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가진 취약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국 산업 보호와 공급망 안정화를 명목으로 보호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4.1. 미국의 신(新) 산업 정책: 자국 이기주의의 발현
특히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같은 정책을 통해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핵심 기술 및 산업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표면적으로는 기후 변화 대응, 인플레이션 완화, 반도체 산업 육성 등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 공제를 통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강제하는 강력한 보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2022년 발효된 이 법안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건설에 527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이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대한 투자 및 기술 유출을 제한하는 '가드레일(Guardrails)' 조항과 같은 엄격한 조건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이중고로 작용하여,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 시장과의 연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는 딜레마를 안겨주었습니다.
-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22년 8월 제정된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며, 배터리 부품 및 핵심 광물 조달 요건까지 명시하여 사실상 북미 중심의 전기차 공급망 구축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동맹국인 한국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며,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과 동시에 복잡한 현지 규제와 자국 이기주의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기존의 자유무역 기조 속에서 쌓아온 통상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변화된 글로벌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약화되고 국가 간 '기술 냉전'이 심화되는 현 상황에서, WTO 규범만으로는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4.2. 탈세계화와 공급망 재편의 복합적 파급 효과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혹은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공급망의 효율성보다는 '탄력성(Resilience)'과 '신뢰성(Trustworthiness)'을 우선시하며, 지정학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들끼리 공급망을 재편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첨단 기술 강국으로서 이러한 프렌드쇼어링의 중요한 파트너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 단순한 협력을 넘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희생을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보호주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흐름이 저해되면, 혁신 저하, 생산 비용 증가, 소비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할 경우, 무역 분쟁이 격화되고 국제 공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도 존재합니다.
5. 일본의 사례와 한국의 특수성: 미묘한 차이점
미국이 한국에 제시한 요구 조건의 근거로 삼는 일본과의 합의 사례는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과의 오랜 동맹 관계 속에서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미국의 첨단 기술 산업 육성 정책에 맞춰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제시한 특정 조건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1. 일본의 전략적 선택과 산업 구조
일본은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 강화를 통해 과거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반도체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최근에는 첨단 로직 반도체 생산 합작사 '라피더스(Rapidus)' 설립 등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 재건을 추진 중입니다. 일본은 라피더스를 통해 2020년대 후반 2나노급 첨단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IBM 등 미국 기술 기업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도쿄일렉트론, 어드반테스트 등 일본의 반도체 장비 및 소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산업 구조와 장기적인 전략은 미국의 강경한 요구를 수용할 만한 명분을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나아가 자국의 경제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5.2. 한국의 특수성과 투자 환경의 차이
그러나 한국의 산업 구조와 대미 투자 상황은 일본과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등 완성품 및 중간재 생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미 오랜 기간 미국 시장에서 활발한 투자를 진행해 왔습니다.
- 반도체 산업의 차이: 한국은 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으며,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삼성전자가 TSMC에 이어 2위 사업자입니다. 일본이 소재 및 장비에 강점이 있다면, 한국은 설계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넘어, R&D 역량과 첨단 기술을 이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 투자 시점과 목적: 한국 기업들은 IRA와 CHIPS Act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발적인 투자를 진행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계획은 CHIPS Act 발효 이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보조금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시장 논리와 사업적 필요성에 기반한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상당수 투자는 미국의 강력한 유인책 이후에 구체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 경제적 타당성 문제: '투자처 지정 및 이익의 90% 미국 귀속'과 같은 조건은 한국 기업들의 현실적인 투자 계획과 경제적 타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불리한 조건은 기업의 투자 포트폴리오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해외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 투자 불확실성 증대: 더욱이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지에서의 운영 상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 섹션에서 다룰 조지아 한국인 노동자 체포 사건과 비자 문제처럼 인력 수급, 현지 문화 적응, 법규 준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일본의 합의 모델을 한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현실적인 투자 계획과 경제적 타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한국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나 '생산 기지 제공'을 넘어, 첨단 기술 동맹으로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수평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 조지아 한국인 노동자 체포 사건과 비자 문제
이번 산업장관 회동과는 별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서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적인 어려움을 조명했습니다. WSJ는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노동자 체포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 정부가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려면 해외 숙련 노동자에게 더 많은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6.1. 조지아 사건의 상세 경과 및 시사점
이 사건은 2024년 초 조지아주에 건설 중이던 한 한국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발생했습니다. 현지 공사에 참여하던 한국인 기술자 수십 명이 비자 문제로 체포되어 구금된 사례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기술 자문을 위해 단기 출장 형태로 미국에 입국했으나, 비자 종류나 체류 기간에 대한 현지 법규 해석의 차이로 인해 불법 체류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첨단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술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첨단 제조 시설은 단순 노동력을 넘어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가진 숙련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현지 인력을 최대한 고용하려 노력하지만, 초기 공장 건설 및 기술 이전에 필요한 핵심 기술 인력은 본국에서 파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6.2. 미국의 비자 정책과 인력난의 구조적 문제
미국 내 숙련 노동자 부족과 엄격한 비자 정책은 한국 기업들의 현지 공장 가동률과 생산 효율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미국 현지 투자의 성공 여부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숙련 기술직에 대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는 그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 H-1B 비자: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는 매년 쿼터가 제한되어 있고, 추첨제로 운영되어 비자 취득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첨단 기술 분야의 해외 인재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 L-1 비자: 기업 내 전근 비자인 L-1은 해외 본사 직원들이 미국 지사로 파견될 때 사용되지만, 이 역시 심사 과정이 까다롭고 시간 소요가 길어 유연한 인력 운영을 어렵게 합니다.
- 단기 출장 비자 문제: 기술 자문이나 장비 설치를 위한 단기 파견 인력의 경우, B-1(사업 방문) 비자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지 법규 해석에 따라 '노동'으로 간주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미국 이민 당국은 '단순 시운전'과 '실질적인 생산 활동'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판단하여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줍니다.
WSJ의 비판은 미국 정부가 자국의 산업 육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넘어, 투자 환경 전반에 대한 현실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반도체 지원법'으로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풀면서도 정작 이를 운용할 핵심 인력의 유입을 가로막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입니다. 기업들은 안정적인 인력 수급 없이는 첨단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문제는 향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전략에 심각한 영향을 미 미칠 수 있습니다.
7. 난항 속 김 장관의 향후 행보와 해결 과제
현재 김정관 장관의 귀국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하워드 러트닉 장관 등 미국 주요 인사들과의 추가 접촉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이번 회동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경제 안보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기업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경제적 실리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7.1. 단기적 협상 전략과 대안 모색
단기적으로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일본 사례와는 다른 한국만의 현실적인 투자 조건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다음 전략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의 특수성 강조: 일본과의 산업 구조, 기존 투자 규모, 투자 목적의 차이점을 명확히 제시하여 일률적인 일본 모델 적용의 부당성을 설명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첨단 기술이 미국의 공급망 강화에 기여하는 바를 구체적인 데이터와 함께 강조해야 합니다.
- 상호주의 원칙 적용: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시 한국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조건들을 예시로 들며, 상호 호혜적인 관점에서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 다자 협력 채널 활용: WTO 등 다자 통상 기구의 원칙을 환기시키고, 미국 보호주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모색하여 미국을 압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미국 내 우호 세력 활용: 미국 상공회의소,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주 정부 및 지방 의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한국 기업 투자의 긍정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의회 내 지지 여론을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7.2. 장기적인 산업 전략 및 리스크 관리
장기적으로는 변화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 기조 속에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독자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 공급망 다변화: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투자처 및 공급망을 동남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전략을 강화해야 합니다. '중국 + 1' 전략을 넘어 '미국 + 1' 전략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기술 자립 및 초격차 유지: 핵심 기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R&D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 자립도를 높여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차세대 배터리 등 미래 성장 동력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 투자 기업 지원 강화: 미국 현지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 현지 법규 자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 지원 등이 포함됩니다.
-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 해외 투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핵심 산업의 국내 기반을 굳건히 하는 것이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각적인 접근은 단순히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한국이 주도적으로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8. 복잡한 경제 외교의 중요성: 상호 이익 추구
이번 한미 산업장관 회동이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것은, 양국 간 경제 외교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방증합니다. 단순한 동맹 관계를 넘어, 경제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각국의 정책 기조 속에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 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제 정치학에서 리얼리즘(Realism)적 관점은 국가들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보며, 이는 현재 미국의 행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틀이 됩니다. 반면 리버럴리즘(Liberalism)적 관점은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며, 한국은 이러한 협력적 접근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동시에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무역 협상을 넘어,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에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중요한 과업입니다.
궁극적으로 한미 경제 동맹은 단순한 거래 관계가 아닌,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또한 동맹국의 입장을 경청하고, 일방적인 요구보다는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접근이 양국 모두에게 더욱 견고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안보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전략적 협력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동맹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섬세한 외교적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양국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용어해석
- 관세: 한 국가가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나 재정 수입 증대를 목적으로 합니다.
- 공급망: 제품이나 서비스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기업, 인프라, 활동의 연결망을 의미합니다. 이는 원자재 조달부터 완제품 판매까지의 모든 단계를 포함합니다.
- 보호주의: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외국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거나 국내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말합니다. 관세 부과, 수입 쿼터제, 비관세 장벽 등이 대표적 수단입니다.
-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 2022년에 제정한 법안으로,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 공제를 지원하지만 '가드레일' 등 엄격한 조건을 부과합니다.
-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미국이 인플레이션 완화, 기후 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를 목표로 2022년에 제정한 법안으로, 주로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 및 배터리에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여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유도합니다.
- 경제 주권: 한 국가가 자국의 경제 정책을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없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지정학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들끼리 공급망을 재편하여 안정성을 높이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효율성보다는 신뢰성과 안보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 무역확장법 232조: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조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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